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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진실보다 상상력이 먼저가 됐을까..?

티니 2013.05.22 14:07


공백보완효과(공간보완효과), 예제는 소년탐정 김전일 사건 중 캡쳐


 공백보완효과(공간보완효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다른 명칭이 다시 있을 것 같으나 영어로 찾아보진 않아서 전문용어가 따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공백보완효과란 그냥 단순하게 보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을, 다른 상황이나 무엇인가 관련한 것을 통해 연관해서 원래의 무엇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예제로 올린 사진은 소년탐정 김전일-아마쿠사 보물 살인 사건에서 나온 장면이다. 맨 왼쪽의 그림만 봐선 저게 뭔지 알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적절하게 저 공백을 검은색으로 덮어서 포장하면 'R'이라는 글씨가 보이게 된다. 이것이 살인사건의 알리바이를 깨뜨리는 열쇠가 된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처럼 끊어진 길이 있는 지도에 담배등을 이용해 손상을 시키면 지름길인것 처럼 보이게 되고 지름길로 갔다 막힌 길인것을 알고 가장 늦게 올때 살인을 저지르는 방식이었다.


 

 요즘 세상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신이 없다. 이번 5월만 해도 비행기 내 라면 끓여오기 시작하는 라면상무 부터 시작, 甲의 횡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남양, 대통령 미국 방문 일정중에 스캔들 일으킨 윤창중, 민주화 발언으로 도마에 오른 전효성, 임대인과 임차인간의 논란이 되고 있는 리쌍..


 그리고 어제 저녁 갑작스레 등장한 손호영과 관련한 뉴스까지, 뉴스가 넘쳐난다 이 와중에 국정원의 지난 대선 개입 문제나, 불산등의 이야기는 언급조차 될 일이 없다. 이 외에도 크다면 크고 작은 일들은 많았지만 이미 저정도의 상황으로 모든 일이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신문, 방송은 서로간의 보완의 요소가 강한 존재다. 방송은 파급력도 강하고 속보도 신문에 비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한된 시간안에서 뉴스를 다루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신문은 발행의 문제상 속보가 빠르게만 해결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면의 여유가 있어 더욱 많은 뉴스를 다룰 수가 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면서 이 둘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듯한 인터넷신문이 등장했다. 속보도 빠르고, 파급력은 포털의 힘을 빌리지만 강하며, 지면의 제한이 없다. 다시 말해 모든 이야기를 써낼 수가 있다. 정보의 전달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걸러내기가 없어도 된다. 혹은 1보 2보 3보식으로 여러개의 기사를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한된 지면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이 인터넷신문과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가 만들어 낸 이 시대의 비극이기도 하다. 화제가 되는 모든 검색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매체들도 포털을 통해 전송을 하고 독자들은 읽는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어느 매체인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손이 가는대로 읽는 경우가 다반사다. 적은 수의 독자들은 특정 매체의 글을 선호하고 특정 기자의 글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제공되는 정보, 아니 정확히는 인터넷 신문의 페이지뷰(PV)를 벌기 위한 치열한 혈투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검색어의 인물과 관련한 지인, 관계자, 측근, 익명의 제보자를 만난다. 누구인지 대부분 실명(혹은 정체)은 공개하지 않는다 대부분. A, B, C매체가 각자 다른 내용의 기사를 써도 그 제보자가 똑같은 D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 취재활동을 한 매체의 기자와 제보자만 알 것이다.


 지면의 제한이 없다는 것, 그리고 페이지뷰를 벌기 위한 매체의 활동이 왕성해 질 수록 하나의 사건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지속적으로 커져나간다. 분명 사건과 관련한 팩트는 한가지이고 현재까지 나온건 위에 언급한 R의 기본 뼈대밖에 없는데, 익명의 제보자를 통한 새로운 증거가 하나 둘 늘어가며  R을 검은색으로 덮어준다. 그렇게 독자들의 상상력은 하나 둘 늘어가고, 팩트와는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새로운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에 일부 설득력 있어보이는 상상력의 산물이 새로운 결론처럼 굳어간다.


 상상력의 산물이 등장하는 상황은 양쪽의 입장이 다 나오지도 않았을 무렵, 어느순간 한쪽은 일방적으로 매장에 가까운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드는데 양념을 치는 것은 안타깝게도 언론이다. 사건은 하나고 관련인은 G와 H인것 같은데 어디서 그렇게 수많은 관계자와 제보자가 등장하고, 그 기사 한개가 새롭게 등장하면 또 다른 언론은 다시 그 기사를 인용한다. 


 사건은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하고, 적어도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터넷 세상은 그런것이 없다. 명백하게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으나, 아직 시작중인 일이며 조사를 더 해봐야 하는 일을 단지 페이지뷰 얼마를 위해 해당 인물의 주변 제보자의 이야기에 따르면이라는 결론으로 자꾸 상상력을 키우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왜 언론이 대중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공백보완효과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추측성 기사는 제발 지양됐으면 한다. 언론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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