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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깅 인생

티니 2012.12.12 11:49

어쩌다보니 내 학교생활은 컴퓨터와 인연이 많았었고, 나름 이렇게 저렇게 기초적인 컴퓨터를 통한 쓸만한 일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컴퓨터 고쳐주거나 봐줄 일이 생기던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가 꽤나 많다.


고등학교때 윈도우 씨디를 넣고 새로 설치를 하려고 하는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전화, BIOS에 들어가서 부트순서 변경하는 방법까지는 알려주고 수정을 했지만 그래도 안된다기에 결국 그 친구네 집에 30분걸려 도착했는데 'Press any key from CD...' 에서 아무키를 안눌러서 벌어진 대참사도 있었고...


컴퓨터란 기계를 써오면서 느끼는 점은 하나다.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는 부분, 그래서 더 재밌는 기계였다. 어지간한 일들을(내 몸에 필요한 영양소와 산소공급이나, 배설을 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다 할 수 있는 기계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 있어 내가 쓰는 도구가 확실하게 제대로 동작을 하지 못할때 뭔가의 이유를 만들어서 난 어디가 안좋다는 티를 직접적으로 낸다. 그 덕분에 에러메시지를 보고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고 비슷한 문제에 대해 사례집들이 있어 찾아보면 해결을 하게 되기도 한다.


아 물론 컴퓨터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할때의 지옥은 좀 다르다. 디버그를 하기 시작할때 묘하게 디버그에서 실패해서 문제해결을 못하면 지옥을 본다는거 이건 참 무서운 이야기다. 굳이 따지면 회사생활할때 뭔가가 잘못된건 아닌거 같은데 상사의 심리상태에 따라 에러가 나서 보고서 재작성을 할 수도 있고, 그냥 결재를 받고 진행할 수도 있는거긴 하다만..



지금의 내 인생은 컴퓨터 외적인 디버깅 인생이다. 컴퓨터 뭐가 안돼요 라는 말을 접수하면 그에 따른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평범하게 말하면 유지보수적 일이지만 난 이 부분을 시스템 분석 및 관리라고 말하고 싶다.


근데 이 일을 하면서 점차 늘어가는건 환자 얼굴이나 들어올때 동작만 봐도 대강의 증상을 짐작 가능하신 명의분들급의 느낌처럼 전화가 와서 뭐가 안되요라고 말을 하면 전화로만 들어도 뭔지 알아채기 시작한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였으나 쉽게 해결 가능한 일도 많이 생겼다.



근데.......


막무가내형 인간들을 상대해보면 과연 이들에게 원인과 결과라는걸 모르는건가 싶어서 가끔 뻗칠때가 있다. 요즘의 내 인생 연구주제중에 하나는 바로 이 막무가내형 사람들에 대한 디버깅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변했을까 이 사람들을 어떻게 습관을 고쳐드려야 할까.. 라는 재미난 주제다.



막무가내형 인간들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 일단 무조건 뭐가 안된단다. 설명따위는 없다. 


- "어느 프로그램에서 어느 부분에서 어느걸 하는데 어떻게 안돼네요" 이런건 없다. 당신께서 하신 일인데 뭐가 왜 안돼는지는 상관 없다. 그냥 "너는 내가 안돼는걸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어 XX야"라는 듯한 포스를 내뿜는다.


- 그렇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어려워지고 너 지금 내말 무시해? 라는 듯한 포스를 암암리에 내뿜으며 결국 과열이 된다.


- 설명을 요청하고 어떻게해서 뭐가 안되었는지 물어봐도 난 잘 모르겠단 뉘앙스를 뿜는다. 내가 당신의 작업을 항상 지켜보고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100% 믿는건가. 그럴 정도의 능력(보지도 않고,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면 내 연봉은 대기업 임원급은 받아야 할거다. 세상 어느천지에 보지도 않고 당신이 어떠한 문제를 만들었는데 그걸 그냥 안돼요 세글자를 가지고 아 그럼 이걸 이렇게 해보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컴퓨터가 안켜져요" 라는 8글자만 봐도 문제는 다양하다. 당신이 멀티탭 전원을 꺼뒀을수도 있고, 우연히 플러그가 빠져있을 수도 있으며 전원은 들어와서 Power 램프는 켜져있는데 모니터가 안나올 수도 있는거고, 전원은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 팬만 돌아갈 수도 있고, 전원은 켜져있는데 비프음(삑삑거리는 소리)이 날 수도 있는거 아닌가. 단순하게 당신이 한마디를 말했을때 내 머리속에서 떠오르는건 여러가지의 상황이다.


결국 이거 하나하나를 천천히 물어보며 응대를 해줘야 한다. 그러다 결국 직접 자리에 찾아가서 해결을 하는경우가 대다수지만, 치명적인 하드웨어의 에러 덕분에 문제 해결에 장애생긴적은 드물다. 


전날 옆자리 직원이 춥다고 난로 꽂느라 플러그를 뽑고 간 적이라던가 모니터 전원을 꺼둔 상태로 안켜진다고 했다던가, 모니터 케이블이 살며시 빠져서 모니터만 안나왔다거나... 뭐 이런경우들이 있으면 있었지...



"인터넷을 하는 도중에 창이 꺼져요" 라는 말은 더더욱 초난감하다. 당신이 인터넷을 하는 환경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브라우저의 버전부터 한국의 인터넷 최대의 암초 ActiveX의 설치 개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경영관련 업무를 해서 혹은 견적과 관련한 발주를 하다보니 인터넷을 통한 외부의 뭔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게 충돌이 나는 원인과 충돌해결 방법을 보통 말할때 한마디로 표현한다. 포맷할까요..? 난 쉬운데 그들에겐 어려운 단어다. 백업은 내가 안하니까. 백업하시고 연락주세요 라고 말하면 걍 불편해도 쓰더라.


일반적인 경우 인터넷을 하는 도중에 창이 꺼지는 아주 극악무도한 사건은 대부분 뭔가 ActiveX들끼리 꼬인경우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얘들은 결정적으로 죽으면서 에러메시지도 안던진다. 이런경우 디버깅은 어느 사이트 이용하다 그렇게 되셨냐고 물어보면서 진행한다.



연애하는거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화가 났는데 왜 화가 났는지 천천히 머리속으로 오늘 했던 행동들을 되짚어보는 그런 거랄까, 거기다가 그걸 한다고 해서 화가 풀린다는 보장이 100%는 아니라는것도 매우 비슷하다. 



최근에 받은 전화중에 제일 울컥했던건 "Adobe가 안돼요"라는 전화였다. Adobe사 프로그램이 어디 한두개란 말인가...


그 어떤 일을 하시는데 쓰는 프로그램이냐고 물어보지만 잘 모르겠단다. ....... 내가 무슨 독심술에 초능력자라도 되는걸까....? 결국 이것저것 유도심문을 하다가 PDF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 아 아크로뱃........



디버깅 인생을 살며 생각하게 된건 내가 이 일해서 하찮게 보이는걸까.. 아니면 이 사람들이 일의 방법을 잘 모르는걸까 라는 의문


직장인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회사를 다니고 있는것 아니겠나. 그렇지 않은데 그 사고능력 없는사람을 직원이라고 뽑았으면 인사쪽이 일을 무지하게 못하는거라고 밖에...


당신 윗사람한테 보고할때, 이걸 이렇게 해서 요렇게 하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든 건의를 하든...

당신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때, 이걸 이렇게 하고 요렇게 하고 이렇게 해봐. 라고 전달을 하든 지시를 하든...


당연한거잖아.


근데 왜 나한테는 "안돼요" 세글자로 말을 하는가... 나한테 주는건 일이 아닌가...? 난 이게 내 일인데....



뭐 아무튼 세상일이 그렇다. 최소한 컴퓨터는 참 착한 존재다 어지간하면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 뭔가 실마리를 남겨준다.


고장 혹은 장애 접수를 할때, 기본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어떤 일을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이거 혹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어보는게 정답 아닐까...?


당황하고 급할 수도 있다. 근데 항상 처리하고 보면 그다지 급한일도 아닌데 그냥 불편하니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진짜 뭐 하던 작업 날려먹어서 멘붕했으면 안돼요...... 라는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 그런거도 아닌데 안돼요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화를 하기전엔 미리 증상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정리라도 하고 걸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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